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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즈를 좋아하지만 풍부한 지식이 많은 건 아니라서 내가 듣는 건 마일스와 챗 베이커, 빌리 홀리데이와 에디 히긴스 정도였다. 그중 챗 베이커의 곡은 유난히 차분하고 단조로우면서 그의 목소리를 듣고 있으면 태어날 때부터 우울한 사람이었을 거란 생각이 들었는데 ‘born to be blue’라는 곡의 제목으로 한 이 영화의 표지를 본 순간 도저히 안 볼 수가 없었다. Cigarette after sex처럼 담배 연기 자욱한 흑백 그림 안에 연분홍과 푸른 수채화 물감 한 방울씩 풀어놓은 것 같은 그의 음악이 에단 호크의 눈빛과 너무나도 잘 어울리고 또 닮아 있다. 사실 그의 음악만 좋아했지 그의 일생에 대해선 아는 바가 없었는데, 영화를 보고 나서 조금 혼란스러웠던 건 사실이다.. 꿈과 환상 같은 달콤한 인생을 살지 않았을까 했는데 말이다. 이후 그의 삶이 더 궁금해져서 찾아봤는데 영화는 훨씬 미화되고 포장되어 있었다. 나무위키에선 그를 ‘막장 인생’이라고 표현할 정도.. 그의 일생을 연도 순으로 쭉 정리해 놓은 걸 봐도 마약과 여자의 무한 반복이라서, 이 영화가 어느 시기에 있었던 일인지조차 찾기 어려웠고 제인은 이 많은 여자들 중 누구인지도 모르겠다. 그의 음악에 속아 뒤통수를 맞은 느낌이(?) 없잖아 있긴 하지만, 그의 음악적인 면이 사생활에 묻혀 저평가 되는 것은 마음이 아프다.
재즈의 아이콘으로 불린 트럼펫 연주거 '쳇 베이커'의 일생을 다룬 영화.
로버트 버드로 감독의 작품으로 2015년 공개되었다.
에단호크, 카멘 이조고, 칼럼 키스, 스티븐 맥허니, 토니 나포 등이 출연하였다.
줄거리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
그가 음악의 길로 가게 된 과정부터 전성기까지 보여주는 영화일 거라 생각했는데, 영화는 이미 그가 마약으로 몰락하고 난 뒤 사랑하는 여자를 만나 갱생하고 다시 음악에 복귀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앞서 말했 듯 워낙 마약과 여자, 갱생 다짐과 실패의 반복이라 어느 부분인지는 찾기가 어려웠지만.. 챗은 마약으로 수감되었다 풀려난 후 자신의 일대기를 담은 영화를 주연배우로 출연하게 된다. 자신의 옛 여인 ‘일레인’ 역을 맡은 배우 제인을 꼬셔 사랑을 나누게 되지만 약 값을 갚지 못해 데이트 도중 폭력을 당하게 된다. 이 일로 턱을 다치고 보조 치아를 달게 되면서 그는 트럼펫을 더 이상 연주할 수 없었고 더욱더 마약에 의존하게 된다. 제인의 숭고한 희생과 사랑으로 다시 삶의 의지를 되찾아간다. 일자리도 구하고 약도 끊고 다시 재개하기 위해 가짜 치아로 트럼펫을 열심히 연습한다. 보는 내내 에단 호크의 연기에 몰입되어 ‘우리 챗 잘한다! 할 수 있다!’를 외쳤다. 우리도 그렇듯, 영화 속 챗을 부둥부둥 해주는 제인과 주변 인물들도 그렇듯 모두가 한마음 한뜻으로 그를 응원하고 있다. 그리고 마지막 순간, 그는 우리 모두를 배신 때리고 메타돈 대신(약물치료제) 마약을 택한 채 무대에 오른다. 약에 취한 채 그녀를 쳐다보며 ‘I’ve never been in love before’를 부르는 그의 모습에, 제인은 그가 청혼을 하며 준 트럼펫 벨브링 목걸이를 빼고 떠났다. 쳇에게 제인은 어떤 존재였을까 하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그가 제인을 사랑했던 것은 알겠다. 하지만 사랑하는 방법에 있어서는 제인과 차이가 크다. 제인은 그를 향한 마음에 조건이 없다. 그의 음악과 재능을 사랑하지만 어쩌면 그가 마지막 무대를 망치고 다시는 음악에 재기하지 못한다 해도 그를 사랑했을 것이다. 그저 그가 더 이상 악순환에 얽매여 스스로를 절벽으로 밀어 넣지 않을 채 건강한 모습으로 남들처럼 평범하게 살아가길 바랬을 것이다. 아무튼 천재 예술가를 사랑하게 된다는 건 답이 없다. 그의 예술성 뒤에 감춰진 우울함, 지독함, 추악함까지 전부 다 안아버린다. 결국엔 자신이 파멸할 걸 알면서도. 그리고 보란 듯이 챗은 사랑이 아닌 예술을 택해버린다. 하지만 챗은 꽤나 이기적이고 어린아이 같다. 제인을 비롯해 그의 부모님, 딕, 보호감찰사까지. 얼마나 그를 응원하고 아꼈는가. 챗은 그들의 사랑을 쪽쪽 받아먹으며 조금씩 이겨내고 올라오지만, 챗은 그들에게 어떠한 사랑을 베풀었는가? 자신의 꿈은 소중하지만 제인의 꿈은 소중히 여기지 않으며 오디션 때문에 뉴욕에 함께 가지 않는 그녀에게 화를 낸다. 그저 제인은 쳇이 연주하고 노래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아낌없는 나무였을 뿐일까? 그런 제인이 없어 불안한 쳇은 마약 없이는 최고의 무대를 펼칠 수 없다는 걸 느꼈고 끝내 그는 되돌아갈 수 없는 강을 건너고 만다. 그의 무대는 만족스러웠겠지만 그것 외에 모든 것을 잃고 만다.
“천사의 혀로 노래를 불러도 사랑이 없다면 그건 그저 시끄러운 심벌즈 소리에 지나지 않아”
"정교함을 잃은 대신 깊이가 생겼다."
재즈에 대한 그의 열망이었을까? 흑인 재즈 뮤지션 사이에서의 열등감이었을까? 무엇이 그를 알면서도 쳇바퀴처럼 파멸의 길로 되돌아가게 한 것일까
그의 죽음은 그가 59세, 한 호텔에서 피범벅이 된 채 발견됐다고 한다. 마약이었을지, 타살인지, 자살인지 알 수 없으나 그 뒤로 그는 그렇게 한평생 마약을 하며 병들어 가다 떠났다고 한다.
내 행복, 내 사랑, 내 자유, 내 삶까지 모든 것을 예술에 바친 그였지만, 약에 대한 그의 지나치게 강박적인 의존성은 어쩌면 조금 이기심에 가깝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연출된 영화 하나로 챗 베이커라는 위대한 아티스트의 삶 전부를 평가해서는 안 되지만, 예술은 현생에서의 사랑과 행복, 그리고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사람들과 존재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나는 고로 천재 예술가는 될 수 없는 운명인가 보다. 챗 베이커는 현생은 잃었지만 그가 스스로 빠져버린 푸른 바닷속 파멸의 선율은 영원히 아름답고 씁쓸하게 남을 것이다. 그리고 정말 감성 파괴지만 현실적인 영화 평 한 줄은 역시 사람은 고쳐 쓰는 게 아니다, 검은 머리 짐승은 거두는 게 아니다.
영화에서 마일스 데이비스가 등장하는 데, 그에 대한 비교와 음악적 대립도 꽤 있었던 것 같다. 사실 재즈에 대한 역사적인 지식이 없어서 전문적인 용어로 비교를 하긴 어렵다. 마일스의 재즈는 마치 붉은 조명의 끈적찌근한 재즈 바에서 마티니 한 잔에 굵직한 시가 한 모금, 정열이 느껴지는 섹시함이다. 반면 챗 베이커의 재즈는 흑백영화 속 한 침실에서 쉬폰 커튼이 바람에 흩날리고 얇은 담배 한 모금의 연기가 우디한 향과 함께 방을 매우면, 홀로 연분홍색 레오타드를 입은 가녀린 여인이 발레를 하며 다가와 침대에 누운 챗에게 키스를 할 것 같은 느낌이다. 다음 생은 이 음악처럼 조금 더 사랑과 축복이 가득한 삶이길 챗 베이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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