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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보

    스탠리 큐브릭이 1980년에 제작한 공포 영화. 스티븐 킹의 소설 '샤이닝'이 원작.

    스탠리 큐브릭의 ‘샤이닝’은 꽤나 오래전 영화임에도 단순한 소리와 불쾌한 분장 만으로 공포를 조성하는 기존 공포물과 달리 특별한 장치 없이도 인간의 ‘심리’ 하나 만으로 극한의 소름으로 이끌어 낼 수 있다는 것이 굉장히 세련된 작품이다.

    이것을 단순히 공포영화라 칭하기에는 내포하는 의미가 굉장히 많다. 단순히 아무도 없는 호텔 속 귀신에 사로잡힌 것이 아닌, ‘고립’이라는 상황 속에 인간 내면에 깊숙이 자리 잡은 불편한 심리와 만나 그 한계의 끝을 보여줌으로써, 그 호텔의 망령들은 어쩌면 인간의 기억이 만들어내는 환각의 일종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영화를 소리 소문 없이 서서히 공포로 몰아가는 장치 중에 하나는 ‘시간’에 대한 망각이다. 5개월이란 기간을 지내게 되지만, 영화는 ‘한 달 후’, ‘월요일’ , ‘목요일’ 이런 식으로 구체적인 날짜가 아닌 피상적인 시간만 나타내고 있다. 관객들은 정확히 얼마나 시간이 지났는지 알 수 없으며, 이들이 탈출하기까지는 얼마나 남았는지조차 알 수 없다.

     

    줄거리

    글을 쓰는 작가인 ‘잭’은 비 성수기인 겨울에 문을 닫는 오버룩 호텔에 그 기간 동안 관리인으로 일하게 된다.

    철저한 고립과 우울, 그리고 지난 관리인이 미쳐서 가족들을 살해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으나 집중해서 글을 써야 하는 그에겐 최고의 환경이라는 생각에 부인 웬디와 아들 대니와 함께 호텔에서 지내게 된다.

     

    잭이 대니가 아주 어릴 때 술에 취해 들어와 실수로 대니의 쇄골을 다치게 하는 사고가 있었고, 그 이후 대니는 ‘샤이닝’이라는 일종의 초능력을 가지게 된다. 입속에 ‘토니’라고 부르는 또 다른 자아가 살게 되고, 토니는 대니에게 앞으로 일어날 미래 또는 과거의 여러 사건들을 보여주기도 한다.

    토니는 ‘오버룩 호텔’의 과거 비극과 앞으로 닥칠 운명들을 대니에게 보여주었다. 적막하고 고립된, 모든 것이 미로처럼 탈출구 없이 흘러가는 호텔의 일상 속에서, 자신은 그럴 일 없다고 호언장담한 잭 마저 서서히 환각과 함께 미쳐가고 있었다. 날카롭고 예민해지며 아내에게 큰 소리를 치기도 한다.

     

    한편 대니는, 자신과 같은 샤이닝 능력을 가진 흑인 수석 요리사로부터 절대 가지 말라고 경고를 받은 237호실의 문이 열려 있는 것을 보고 들어가게 된다. 그곳에서 목에 상처를 얻은 대니의 시작으로, 잭의 환각과 더불어 점점 공포로 몰아닥치기 시작한다.

    웬디는 과거 술을 먹고 대니를 때린 적이 있던 남편을 의심하고, 잭은 237호에서 대니를 목 졸랐다는 욕조 속 여인의 망령을 마주한다. 웬디는 대니의 정신적 상태를 염려해 그만 호텔을 나와 병원을 가자고 하지만, 잭은 글을 써서 돈을 벌어야 하는 가장으로서, 이 호텔의 관리자로서의 책임을 회피하라는 것이냐며 극대노 한다.

    잭은 파티에서 보았던 전 관리인의 망령 로이드로부터 ‘아내를 잘 단속해야 한다, 바른길로 인내해야 한다’는 계시를 받으며 그의 광기는 결국 웬디를 위협하기에 이른다.

    대니의 자아 ‘토니’는 위협을 감지하고 ‘REDRUM’이라는 글씨로 웬디에게 거울 속으로 살인을 예고하고, 샤이닝을 감지한 요리사의 도움과 더불어 둘은 무사히 잭의 위협으로부터 벗어나 호텔을 탈출한다. 마침내 잭은 호텔 정원의 미로 속에서 길을 잃고 얼어 죽게 된다.

     

     

     

    촬영 현장 

    스탠리 큐브릭을 ‘지나친 완벽주의자’라고 했던가. 그의 완벽에 대한 지나친 강박은 영화 촬영 방식에 고스란히 들어가 있다.

    잭이 웬디를 찾기 위해 화장실 문을 도끼로 부시는 장면은 문이 60번이나 교체됐다고 한다. 잭의 글 쓰는 것에 대한 집착이 낳은 환상 중 하나로 ‘All work and no play makes jack a dull boy’라는 문장이 빼곡한 종이를 넘기는 장면은 잭의 광기를 소름 끼치게 잘 들어낸 연출이었는데, 실제로 이 소품은 실제로 몇 백 장을 사람이 직접 타이핑으로 작성한 것이라 한다.

     

    그의 이런 작품에 대한 열정은 배우 한 사람을 영원히 ‘샤이닝’의 공포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게 하기도 했다.

    잭의 아내 웬디 역을 맡았던 배우 ‘셜리 두발’이 겁먹은 연기를 실제처럼 하기 위해서 실제 촬영장에서 그녀에게 어떠한 동정과 칭찬도 하지 못하도록 했다. 철저한 고립과 무시 속에서 촬영을 진행했고, 영화 속 웬디가 광기 어린 잭에게 계단에서 방망이를 휘두르며 뒷걸음질하는 장면은 무려 200컷이 넘게 촬영됐다고 한다. 그 장면에서 충혈된 눈으로 비명을 지르며 겁에 질린 모습은 연기가 아닌, 200컷 이상의 촬영 속에서 실제 셜리 듀발이 느낀 압박과 공포로 나온 모습이었다.

    그래서였을까. 난 그녀의 연기를 보면서, 극 중 상황으로써 겁에 질린 모습이라기보단, 어딘가 영혼 하나가 빠져나가 맥없이 소리만 지르는 탈수 직전의 인형 같은 느낌이 들었다.

     

    실제로 이 영화가 개봉된 후, 잭 니콜슨을 비롯한 모든 배우들이 극찬을 받고 영화는 승승장구했지만, 셜리 두발은 극에 어울리지 않는 외모와 연기로 혹평을 받았다고 한다.

    그는 연기하는 연기를 원치 않았고, 정말로 공포에 질린, 날 것 그대로의 인간의 표정을 담고 싶었을 것이다. 어쩌면 지나친 메소드의 찬사에서 나온 연기 자체에 대한 오해라고 생각한다. 그녀의 표정이, 행동, 그리고 눈빛이, ‘연기’가 아닌 날 것의 그것인 것은 확실하다.

    하지만 스크린 속 그녀의 ‘날 것’은 캐릭터 ‘웬디’로서가 아닌 ‘셜리 듀발’의 것이다. 철저하게 그 상황 속에 집중하여 잭의 광기에 겁먹은 웬디가 아닌, 감독과 촬영 현장이 조성하는 압박과 수많은 컷 속에서 느끼는 공포감이 만든 셜리 두발일 뿐이기에, 그것이 연기인지 연기가 아닌지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 이 이질감은 오히려 실제가 실제가 아닌 게 되어버린 역설을 낳았다.

     

    영화가 끝난 후 그녀는 백발노인이 된 지금까지 정신과 치료를 받으며 환각과 함께 영원히 ‘샤이닝’에 갇혀버리게 되었다.

     

     

    리뷰

     

    수많은 우여곡절 끝에 탄생한 이 영화는 앞서 말했듯 단순히 망령이 가득한 호텔에서 미쳐간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망령 로이드의 대화나, 잭의 환각을 들여다보면, 모든 것은 잭의 과거와 내면 깊숙이 자리 잡은 오래된 고물덩어리와 같다. 잭은 술에 취해 아들 대니를 때린 것에 대한 죄책감이 늘 가슴 한 켠에 자리 잡았다. 웬디 또한 머리로는 애써 ‘단순한 사고일 뿐’이라 여기지만 남편에 대한 원망과 불신을 늘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대니 또한 그때의 일이 트라우마가 되어 ‘토니’라는 망상 속 인물을 만들어 정신분열증을 앓고 있었고, 아버지에 대한 공포감도 은연중에 자리 잡았을 것이다. 그 사고 이후로 잭은 죄책감에 술을 끊었지만, 늘 술에 대한 염원이 가득했고, 은연중에 자신을 원망 어린 눈초리로 쳐다보는 아내에 대해 숨 막히고 지긋지긋했던 감정이 생겼을 것이다. 언젠간 웬디의 버릇을 단단히 고쳐주고 싶은 마음을 품었을 것이고. 그가 가진 폭력적인 성향과 가장으로서 큰소리치고 싶은 욕구는 그 사건 이후로 그를 옭아 매였고, 그가 그의 권위를 회복하기 위해선 글쓰기에 집착해 하루빨리 작가로 돈을 버는 방법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 인물들의 억제되어 있던 심리는 ‘고립’이라는 극한 상황에서 화산처럼 폭발해 버린 것이다. 그리고 그 모든 환각들은 그들의 심리 속 악순환 고리가 탄생시킨 악령 덩어리다.

     

    이 영화 속 모든 것들은 환각이 아닌 가까이 있는 현실일지도 모른다. 누구나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는 악마 한 마리일 뿐. 그것을 억제하고 참아내고 또는 잊기 위해 특정한 것에 집착하기도 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인간과 더불어 살아가야 하는 존재이고, 그 인간이라는 삶의 이유를 철저히 차단시킨 고립 속에서, 우리가 가둬 키우는 악마 한 마리가 어떻게 표출하는지를 잘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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